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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처음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자신에게도 있었던 미숙한 시절을 우리는 모두 잊어버리고 어리바리해 보이는 신규직원을 답답해하곤 한다.

물론 직장생활을 잘해서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을 원하느냐, 아니면 무난하게 없는 듯 지내고 싶은지 자신이 원하는 방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직장에서 불편해하는 것을 기록해 보려고 한다. 주변에서 지인들과 내가 겪은 기억을 토대로 아래와 같은 직원이 싫다고 한 기억이 있어 남겨보고자 한다.




1. 생각 없이 아무거나 아무 때나 물어본다.


한 때 나의 어린 모습이고 누구나의 어린 모습이기도 하다. 모르니까 그리고 그 모르는 것을 친절하게 알려주는 사수가 있으니까 그 경험에 기반해서 서로 친밀도를 높이는 과정일 수도 있지만 그런 경우가 아닌 경우라면 아무 때나 아무거나 질문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물론 도움을 주는 것을 좋아하는 그런 직원들의 경우는 예외지만 대체로 업무에 대한 고민과 문제 해결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툭 들어오는 질문으로 생각과 업무의 흐름이 흐트러질 수가 있다. 이미 상당한 호감이 있는 경우 이런 엉뚱한 모습이나 질문이 신선하게 다가올 수도 있지만 그건 일부 미남 미녀에게 해당하는 듯하다. 따라서 무언가 질문을 할 때는 상대방에게 질문을 할 적절한 말을 덧붙여서 시작해주는 것이 좋다. " 저~... 혹시~, 잠시 시간 되시나요?". 물론 이 글을 보면서 저 정도의 예의도 없이 훅 질문하는 상황은 있겠는가 싶겠지만 의외로 이런 사람들이 많다.



2. 문장을 제대로 만들지 않는다.


친구들과 대화하던 습관이 남아서 문장에 주어가 빠지거나, 목적어가, 때로는 동사의 어미가 빠진 채로 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갑작스럽게 "아, (주어) (목적어 누락) 망했는데요."라고 말을 한다거나 "(주어 누락) 못 오신다고 합니다." 하는 예가 이런 식이다. 또는 뒷부분을 생략한다던가 하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상대방에게 답답함을 주게 된다. 의외로 조용한 사무실의 분위기를 깨 보겠다고 하는 그런 영웅심인지는 모르겠지만 갑작스럽게 툭하고 던지는 말들을 많이 하기도 한다. 문장을 만들지 않고 말하는 경우가 가장 빛나는 경우는 카카오톡 등 메신저를 통한 대화다. 이런 경우 대체로 주어나 목적어를 많이 누락하는 경우가 많은데 아마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문장에 주어나 목적어가 빠진 경우 상대방은 거기에 "나"라는 주어를 넣어서 해석하는 경우도 있고 "너"라는 상대방을 주어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이게 서로 잘 못 해석되는 경우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3. 지시를 귀로만 듣는다.


경청을 한다고 눈을 바라본다고 답이 아니다. 물론 머리가 상당히 좋은 경우는 예외다. 잊어버리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받아 적지 않는다고 문제가 크지는 않지만, 받아 적지 않고 훗날 스캐쥴을 놓친 뒤에 깜빡했습니다. 한다던가 제가 바빠서 그만 까먹었습니다. 라던가 하는 경우가 없도록 기재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기재를 한다면 실수로 깜빡했다고 했을 떼 기재하면서 깜빡하는 경우는 그래도 한 두 번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주 깜빡하고 잊어버리는 일이 많다면 그 사람을 신뢰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필기하는 것이 귀찮더라도 메모장과 펜, 다이어리 등을 들고 기재하는 시늉이라도 한다면 상대방은 그 성의에 조금은 감사한 마음이 들기도 할 것이다.


4. 결론이 언제 나오는지 모르겠다.


지인이나 사귀는 상대나 협상의 상대와는 드라마틱한 대화가 좋지만, 직장상사에게는 결론이 먼저 나오는 것이 좋다. 결론을 먼저 얘기해주고 그다음에 살을 붙이는 것이다. 아마도 상관의 경우 대체로 바쁜 몸이고 부하직원들의 얘기들을 세세하게 들어줄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결론만 딱 들어도 사정이 보이는 경험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가급적 결론을 말하고 그리고 이유나 과정을 이후에 말해주는 것이 좋다. 말을 직접 하기 어렵다면 육하원칙에 따라 어딘가 메모하여 서문으로 전달하는 방법도 좋을 것이다.



5. 간단한 철자나 소수점을 틀린다.


소수점이나 맞춤법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보통의 많은 직원들이 틀리지 않는데 딱 한 두 명의 직원이 유별나게 계속 틀린다면 그 직원의 기안문이나 제안 문서를 내용보다는 맞춤법에 신경이 쓰이게 될 것이고, 한 번에 패스될 것도 두 번 세 번 의심의 눈으로 반려될 수도 있을 것이다.



6. 업무가 한번 진행되면 함흥차사(咸興差使)다.

 

지시 업무 등 무언가 진행하고 있는 업무에 대해서 중간보고가 없다. 일이 진행되고 있는 일이 다소 생각보다 길어지거나 도중 과정이 궁금할 수도 있는데 보고가 없다. 중간보고를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중간보고라고 해서 딱히 서식을 갖추거나 정형화 된 보고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티타임을 갖거나 잠시 대화를 나룰 기회가 생기거나 만들게 된다면 "ㅇㅇㅇ 건 ㅇㅇㅇ까지는 처리가 되었습니다." 라던가 하는 것이다.

7. 모니터만 바라보고 응답하기

 

때로 작은 행동 하나로 누군가로부터 원망을 받을 수도 있다. 자신은 전혀 모르는 데 누군가가 나에게 악감정을 갖기도 한다. 너무나 빠쁘게 입력할 것들이 많아서 옆에서 직장동료가 무언가 물어보러 왔을 때 깜빡하고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도 않고 대답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면 다음에 대화를 나눌 때는 잠시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고개를 돌려 눈을 바라보도록 하자. 때로는 작은 이 행동이 상대방에게 마음을 열게 해 준다. 반대로 모니터에 고정한 채로 대답을 해보면 상대는 무시당한 감정에 상당히 속상한 감정을 깊이 품게 될 것이다. 이렇게 대하더라도 이해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지만 그것보다 잠시 그동안 여유를 가지고 상대방에게 내 시간을 조금 할당해 주면 어떨까? 대부분의 직장인이 모니터만 바라보고 대답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작은 배려에서 큰 감동을 받을지도 모른다.




7. 일이 힘들고 많다고 자주 불평하기

 

나도 자주 불평하곤 했던 것 같다. 술자리에서도 식사자리에서도 일이 많다고 틈틈이 어필을 했다. 이렇게 말을 해야만 알아듣고 나중에 내 업무를 조정해 줄 것이란 기대에서였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별다른 조정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10년 정도의 시간이 지나 동료 직원으로부터 부하직원의 흉보는 내용을 들었었다. 부하직원이 너무나 불평과 볼멘소리를 많이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얘기를 들으면 종종 도와주던 그 사람이 그 불평하는 직원에 대한 불만이 있어서 그 직원이 일 많다고 하고 퇴근을 언제 하는지, 야근은 언제 하는지, 주말에는 나오는지 그런 부분을 더 집중해서 보게 되었다고 한다. 일은 많다고 하는데 6시 칼퇴근을 하고 주말에 잔업을 하러 오는 경우는 거의 극히 드물다고 했다. 나는 옆에서 6시 칼퇴근이 당연한 거고 그런 문화가 정착되어야 하는 거라고 이제 그런 거는 이해해줘야 한다고 대답해주었다. 그 불평하는 직원이 일이 많은 것은 얘기를 듣는 제삼자인 내가 봐도 분명한데 그 직원이 오히려 일이 많다고 해도 미운털이 박힌 상태여서 곱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듯하다. 아파서 병가를 내는 것도 조퇴를 하는 것도 일이 많다고 한 행동과 반대되는 행동만 한다고 그 얘기를 내게 해주며 흥분을 하며 화를 내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내가 일이 많다고 하는 순간 모든 것이 걸쇠가 되는 것이다. 일찍 퇴근하거나, 야근을 안 하거나, 조퇴를 하거나 연가를 내는 모든 행동이 사실상 그 일이 많다는 것과 상반되는 행동이라 쉽게 그런 행동을 하기 어렵게 자승자박 하는 상황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일의 불평과 불만 같은 경우는 회사 내부에서는 가급적 하지 않고 가족이나 친구라던가 개인적으로 일기장에 토로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7.  가족 같은 회사 분위기

 

나는 가족 같은 회사 분위기, 가족같은 직원 이런 말을 처음에는 진심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과장은 아버지처럼 팀장은 어머니처럼 직장 상사는 나이 많으면 형, 누나, 아니면 다들 동생이나 친구처럼 호칭을 부르곤 했다. 그런 나 자신이 사회성이 매우 뛰어나 보일 것이라고 착각하며 지냈다. 물론 그런 관계가 유지되는 동안은 너무나 행복하고 그렇지 않은 사이보다는 좀 더 가까운 것처럼 느끼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무언가 큰일이 닥쳐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그 책임을 누가 질 것인가 하는 부분과 그 짐을 누가 맡아 해결할 것인가라는 문제로 업무분장을 하던 날 가족 같은 분위기가 가족 같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조금은 느끼게 되었다. 누구도 그 일을 맡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일을 하나 더 맡는다고 그에 대한 보수가 늘어나는 것도 없고 잘 못하면 감사에 주요 타깃이 되는 상황이었었다. 돌고 돌아 모두 거절하자 나에게 일이 왔고 나는 그저 맡아서 하면서 일에 치이는 일상을 지내다 보니 웃음기도 사라지기 시작했었다. 그리고 나만 혼자 덩그러니 사무실에 남겨져서 일을 하고 있는 처량함에 가족 같다는 것은 사실 가족이 아니라는 말과 함께 가족 같아 보일 수는 있다 라는 것처럼 느껴졌다. 물론 구성원에 따라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관계가 있을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배우자보다 더욱 배우자 같은 관계도 성립되기도 한다. 나의 경우 육아휴직으로 1년 못되게 쉰 적이 있었는데 그때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술자리를 갖고자 연락을 했다가 육아휴직 중이라는 말을 했었고 점차 사람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지면서 점차 관계가 생각보다 돈독한 것만은 아녔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 사람들과 사람들 사이에서 겉으로 웃고 재미있는 얘기를 나누고 생각을 공유하곤 하지만 직장에서는 동료가 나를 꺾고 승진이 되고 나만 승진하지 못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내가 동생처럼 쉽게 편하게 이런저런 지시를 하던 후배가 내 위로 승진하기도 하고 그런 밀리는 상황 속에서 나보다 빨리 달려가고 있는 동기나 후배들을 넋 놓고 바라볼 때가 있다. 직장 동료는 직장 동료일 뿐 결국 그 현실을 인지하면 그 적정한 관계에서 기대보다 큰 행복감도 있을 것이다.

8.  내일이 마지막인 것처럼, 오늘을 불사르자

 

'열정만이 모든 것이다.'라던가 '나는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사과나무를 심겠다.'라거나 '일하다 쓰러져 죽더라도...'라는 정신으로 몸을 불태워 본 적이 있는가? 나는 그랬었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몸을 사린다. 사회초년생에게 직장이라는 것은 제일 첫 번째 정거장이자, 마라톤으로 치자면 첫 5km 정도이고 격투기 선수에게 첫 시합일 수도 있다. 때로는 그런 무모한 열정이 빛을 발하고 기회를 잡고 성공에 도달하기도 한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기나긴 게임에서 이제 방금 튜토리얼을 끝낸 당신이 보스 몬스터를 잡겠다고 아무런 장비도 착용하지 않고 맨손으로 때려잡겠다고 달려다가고 있다. 하지만 이런 광경을 보고 있는 고렙 유저들은 흐뭇하게 이 상황을 팝콘 들고 감상할 수도 있다. 하나의 재밋거리 오락거리로 보일 수도 있고 어릴 적 풋풋한 기억을 소환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인생이라는 게임은 단발성 게임이 아니고 절대로 세이브 포인트 따위는 어디에도 없다. 당신이 매일 밤늦게까지 책상머리 앞에 앉아서 야근하고 허리디스크가 터지든 목디스크가 걸리든 그것은 결국 자신의 인생에 짊어질 핸디캡이 될 뿐이다. 당신은 가지지 않아도 될 병을 가질 수도 있고 처음부터 너무 강인하게 몸을 혹사한 나머지 어딘가 불편한 몸이 될 수도 있다.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많은 직장인들이 결국 언젠가는 허리 통증을 획득하게 된다. 허리 통증이 생긴 뒤부터 몸을 아끼고 조심하곤 한다. 하지만 이러한 병들은 생기기 전에 조심하는 것이 제일 좋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나만은 허리디스크와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고 온 심혈을 다해서 최선을 다해서 후회 없는 결과를 갖자라며 일에 올인하고 그 일속에 집중했을 때 느껴지는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에 시간이 광속으로 흐르는 게되어 연애와 삶의 반려자나 사람들의 여유를 뒤로 한채 일에 빠져 일이라는 미니게임 속에 생명을 녹이게 된다. 잘 보면 이 인생은 장기전이다. 비록 1000살, 아니 100살 밖에 살 수 없는 인생이지만 앞으로 남은 삶에 온전한 신체가 필요할 때가 많을 것이다. 당신의 몸은 불멸이 아니고 계속 조금씩 손상되고 기능이 저하되고 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이 몸은 교환 처리가 되지 않는 당신에게 절대적으로 귀속된 제품 같은 것이다. 장거리 달리기를 위해 지금 방금 직업이라는 이종격투기 판에 뛰어든 당신이라는 것을 그리고 앞으로 수많은 경기가 남아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9.  인사는 번거로운 일이다.

 

'인사' 누군가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 자존심을 먼저 낮추는 것이다. 점점 인사라는 것이 사라지고 있다. 시대가 변하고 있는 것처럼 새로운 시대에 태어난 인류에게 구시대의 인류가 인사를 받는다는 것은 고귀한 희귀한 일이 되어버렸다. 한 때는 '내가 생활을 잘 못해서일까?'하고 나 자신을 반성도 해봤지만 나뿐만 아니라 나보다 윗사람들도 인사를 못 받는 것을 보자 그 공평함에 조금은 안심을 했었던 적이 있다. 그들의 호칭을 MZ세대라고 하며 인사라는 기능이 빠진 다른 제품모델인 마냥 부르며 그 행태를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으로 인해 뜻밖에 일부 인사를 하는 사람들은 더욱 눈에 돋보이게 되었다. 그들은 평소 하던대로 허리운동겸 상체를 잠깐 앞으로 숙이거나 배가 얼마나 나왔나 고개를 내려본 것 뿐이지만 그들에 대한 평가는 '예의가 바르다. 친절하다' 그런 쪽의 사람으로 칭송되고 있다. 하지만 인사만 잘한다고 대단한 것도 아니고 오히려 쉽게 보여서 많은 허드렛 일을 받을 수도 있다는 부작용도 있기도 하다. 아무래도 거리감이 느껴지고 조금은 무서운 후배들 보다는 나를 그래도 상관으로 인정해주는 직원이 만만하여 자잘한 업무지시를 내리기도 한다. 그만큼 연결고리가 생긴다는 뜻일 수도 있다. 인사를 하는 것으로 상대방에게 조금은 마음을 열 수도 있다. 하지만 때로는 물리치는 인사도 있다. '안녕하세요. ' 라는 인사가 때로는 인사공격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안녕하세요'가 이상하게도 다른 말을 하기 어렵게 물리치는 느낌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상황을 모면하는 기능이 있는 인사는 다양한 기능이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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